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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재정위기와 우리나라 무상의 함정 Day by day

그리스가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하지만 유럽연합은 쉽사리 그들에게 대규모 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왜 일까? 우선 방만한 재정운영에 발목을 잡는 이들이 바로 그리스 국민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정부가 구조조정을 통해 부채를 갚으려는 계획에 반대를 하고 있다. 자신들이 받고 있는 혜택을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유럽연합에서 지원을 해 줘봐야 체질이 바뀌지 않는 그리스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밖에 없으니 지원을 꺼리게 된다.

난 여기서 지켜봐야 할 중요한 대목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심심하면 입밖에 내는 “무상”이란 단어이다.  우리는 그리스를 보고 경계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기영합주의 복지정책이다. 복지는 정부예산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커지기 시작하면 줄일 수가 없다. 오히려 공익이란 이름으로 나날이 정부재정을 좀 먹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알 리가 만무하다. 아니 알고 있다고 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금으로 하면 세금 더 내면 되지? 이러한 안일한 생각으로 그들이 외치는 무상에 동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냉정히 생각을 해보자. 우선 논란이 되고 있는 무상급식이다. 이것이 왜 포퓰리즘이라고 하는지 간단히 알 수가 있다. 사회약자계층을 위한 정책이 우선 아니다. 돈이 있는 사람에게도 혜택을 주겠다는 것인데 이것만큼 오만한 정책이 있을 수가 있냐는 것이다. 그 이유가 혜택을 받는 이들의 부끄럼을 위한 배려? 이런 식의 변명을 하니 웃기다 못해 헛웃음이 나온다. 왜 소중한 세금을 다른 방도로 쓸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들의 인기와 편의주의적 생각으로 집행을 하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일괄적인 혜택이라고 모두 공정한 복지가 아니다. 선진적 복지는 일률적 혜택이 아닌 선별적 혜택이 되어야 한다. 천편일률적으로 모든 이들에게 혜택을 주기 시작하면 다른 이가 낸 세금에 기대어 그것을 좀먹는 사람들이 필히 생기게 마련이고 이는 그리스를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엔 여전히 둔감하다.

경제가 발전하면 어느 국가나 걸리는 병이 복지병이고 이 복지병의 함정에 걸려서 침체된 유럽 국가들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대표적인 나라들이 프랑스, 영국이 있지 않은가. 왜 그러함에도 우리는 그들의 복지를 우러러 보면서 망국의 길로 뛰어들려고 할까?

이는 역사적으로 봐도 모두 공짜 싫어하는 법이 없는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정치인들의 술수이다. 그들은 한정된 시간에 권력을 가지고 살다가 가면 그만이다. 미래? 국가? 국민? 그런 중차대한 생각은 있다고 보여지지도 않는다. 결국엔 권력투쟁을 하는 와중에 국민들의 구미에 맞는 말만 하는 사람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들 중 하나가 되면 더 더욱 퍼주기 시작하는 것이다. 왜냐? 자기 돈이 아니기에. 애초에 국가를 위한 사명감 따윈 개에게나 줘버린 이들이다.

그리스가 그렇다. 그들은 집권하기 위해 과도한 복지정책을 공약했으며 과도한 공무원 임용 그리고 과도한 재정운영을 했다. 하지만 그리스의 정치인들이 내세운 복지정책은 국민들에게 커다란 환영을 받았고 아이러니 하게도 결국엔 그 모든 것들이 그리스를 파멸의 길로 이끌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 작은 나라에서 그토록 큰 빚을 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문제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모라토리엄을 넘어 디폴트를 선언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느냐는 것이다. 병이 들어도 너무 심한 병에 들었기 때문이다. 국민이나 정치인들이나 주고 받은 것을 더 이상 끊을 수 없는 중독의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복지는 중독이다. 한번 맛보면 끊을 수도 줄일 수도 없다. 그렇기에 무분별한 복지정책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비슷하게 흘려갈 수 있다. 아니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공무원수를 늘리고 쓸데 없는 민간단체에 대한 국고 지원 등등 유사한 면이 너무나 많다. 특히 치명타는 무상이란 단어가 이젠 여기 저기 안 들리는 곳이 없다는 점이다. 누구나 공익적인 면에서 무상은 찬성한다. 그러나 이것이 커다란 함정이다. 공익이란 단어만큼 모두에게 달콤한 말은 없지 않은가.

요는 그리스는 복지정책의 남용, 정부의 거대화가 불러온 참극이란 것이다. 결정타는 도덕적 해이. 공짜로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시점에서 그들은 이미 망했다.

2011년 6월 11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요즘 다시 그리스가 문제죠. 그래서 묻힌 글 다시 올려봅니다.


이효리, MBC 파업, 김제동 Day by day

이효리씨 채식을 하는 중인데 우유랑 달걀도 먹지 않는다고 방송에서 이야길 했다. 오늘 신문에 보니 효리씨가 직접 피자를 만드셨는지 기사가 났다. 이효리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채식선언이니 머니 이런 거추장스런 것보단 스스로의 기준을 지키고 만족하며 살아 가시라고 여기저기 나 이렇네 하고 떠들면 결국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을 향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그저 노파심에.

엠비씨 파업 – 시간이 꽤나 흘렀다. 선거 전에 크게 기대하는 바가 있어 시작했는데 선거가 그들의 뜻과는 다르게 나와버렸다. 그렇다고 그냥 돌아갈 수도 없는 형국이다. 사실 공정성이란 말로 방송국에서 뛰쳐나온 그들이지만 이미 지켜보는 사람들 중 파업에 비판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들은 왜 저러는지 이유를 안다. 과거를 돌이켜봐도 그렇고 지금 현재를 봐도 정치적이며 편향적이다. 노조가 편향적이기에 자신들의 성향으로 방송을 하지 못하니 공정하지 못하다고 한다면 일견 그것은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분명 자신들은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서 파업을 한다고 한다. 이걸 보면서 이번 통진당 당권파를 보는 듯 하다. 색이 우리들 눈에는 분명히 보이는데 자신들은 보질 못한다. 그리고 자신들과 뜻이 다르면 배신자로 몰며 위협을 한다. 그것도 대놓고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언론의 자유를 이야기한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자신들과 같은 뜻을 가진 사람이 아닌 아나운서들은 모두 앵무새로 정의를 내려버렸다. 상식조차 없는 파렴치들이다.

김제동, 선거 후 소통이 부진하다. 이번 통진당 사태엔 꿀먹은 벙어리이다. 아 그전에 탈북자에 관해서도 그랬구나. 오늘 탈북자 아줌마의 강연을 들었다. 1시간의 강연 동안 느낀 바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는 스스로가 엄격하게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허울좋은 소통이니 뭐니 이런 그럴싸한 말보단 행동이 신념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 소통 좋아하는 진보 좌파 그들의 적나라한 실체를 봐라. 김제동도 매한가지이다. 통진당 회의를 보았다면 내가 왜 이런 이야길 하는지 쉽사리 알 것이다. 안건 하나 처리를 하는데 장장 9시간을 회의를 하고도 집단린치가 일어났다. 유사한 점은 바로 이것이다. 그 허울좋은 소통이 결국 말뿐이라는 걸. 김제동 그도 마찬가지다. 선거 전에 온갖 말로 심판! 이런 뉘앙스를 풍기더니 선거 후엔 반성조차도 없다. 아니 그 소통 좋아하는 사람이 왜 선거 후엔 아무런 이야기가 없나? 이런 말 전해주고 싶다. 자기 좋을 때만 하는 것이 소통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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